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천 여중생 백골 시신 사건 (문단 편집) == 사건 전개 과정 == 이 양의 아버지이자 가해자 이응봉 목사는 2007년에 아내와 사별하고 2009년 계모 백 씨와 재혼했다. 백 씨는 초혼이었는데 결혼하자마자 전처가 낳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. 이 때문에 백 씨와 아이들 간의 갈등이 상당히 심해져 이응봉 목사의 자녀 3명은 뿔뿔이 흩어졌다. 이 양의 오빠는 결국 2012년에 가출해 [[경남]]의 한 [[고시원]]에서 생활하고, 언니는 [[독일]]로 [[도피유학]]을 떠나서 이 씨의 지인의 집에 머문다고 알려졌다. 막내 이 양은 새 이모(계모의 여동생)의 집에 맡겨졌는데, 새 이모가 이 양 또래의 딸을 데리고 있어서 이 양을 잘 이해할 듯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. 하지만 새 이모는 남의 자식이 들어오는 게 껄끄러웠는지 이 양을 학대했기에 결국 이 양은 사건 일주일 전에 가출했다. 이 양은 이날 밤, 친구 C양을 만나서 자신의 팔다리에 생긴 상처를 보여주었으며 그 상처를 본 C양의 발언이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. 다음 날, 이 양은 초등학교 6학년 때(2014년)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했으며 선생님은 이날 저녁에 이 양을 새 이모에게 돌려보냈다. 물론 새 이모 집에는 아버지 이 씨가 기다리고 있었고 이 양은 이날 오전 1시 쯤 손바닥과 종아리 등에 폭행을 당하고 다시 가출했다. 이 양은 다시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아파트로 찾아갔지만 담임 선생이 집에 없어 만나지 못했다. 기다리다 지친 이 양은 아파트 경비실로 발길을 돌려 경비원에게 "하루만 재워 달라."고 사정했지만 경비원 역시 이 양을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새 이모에게 연락해 돌려보냈다. 새 이모는 이 양을 이 씨 부부에게 인계했으며 결국 이 양의 부모는 이번에는 아이가 집을 뛰쳐나가지 못하게 옷을 벗기고 구타했다. 그것도 '''새벽 1시'''에. 당초에 아침 7시부터 시작됐다던 폭행이 실제로는 새벽 1시부터 더 길게, 오랫동안 계속되었다는 거다. [[주민]]들의 말에 따르면 이 씨 부부는 금슬이 좋았다고 하지만 '''이 목사 부부의 금슬 뒤에는 학대당한 아이들의 상처가 숨어 있었다.''' 이 양의 외삼촌(생모의 동생)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응봉은 평소 아이들을 혼낼 때에는 체벌을 몇 시간씩 계속했다고 한다. (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47&aid=0002107241|관련 기사]]) 이는 잠언 23장 13절("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'''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'''")을 자의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